1983년 KAL 007 추락 "생존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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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유태인 故 아브라함 쉬프린씨' 증언이 결정적 단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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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호성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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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측은 사고 직후 213켤레의 신발을 사고현장에서 수거했다고 공개했다. 무슨 의도와 복선이 짙게 깔려 있었을까? | | 소련 전투기의 첫 번째 미사일 완전히 빗나갔고, 두 번째 미사일은 대한항공기 동체 옆 50m에서 폭발, 대한항공기는 12분을 더 비행해 소련 영해 안의 오베론 섬 근처 바다에 불시착, 승객들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고 주장
24년 전인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추락한 사건이 벌어졌다.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대한항공 007기 승객 269명은 전원 사망했다. KAL007기에는 한국인 105명, 미국인 62명, 일본인 28명, 대만인 23명 등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 007기 사고 유가족인 버트 슐로스버그 교수는 ‘Rescue 007: The Untold Story of KAL 007 and Its Survivors’란 제목의 책을 내고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바다에 불시착했으며 생존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슐로스버그 교수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지난 2003년 9월 홍성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판의 제목은 ‘KAL 007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며 슐로스버그 교수의 웹사이트 주소는 www.rescue007.org이다.
‘KAL007, 소련 바다에 불시착’
슐로스버그 교수는 대한항공 007기의 무선교신 내용을 기초로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제대로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 전투기의 첫 번째 미사일은 완전히 빗나갔고, 두 번째 미사일은 대한항공기 동체 옆 50m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미사일 파편이 대한항공기를 강타해 타격을 줬지만 대한항공기는 12분을 더 비행해 소련 영해 안의 오베론 섬 근처 바다에 불시착했다는 설명이다.
KAL007 블랙박스의 무선교신 내용을 보면 새벽 6시 26분 KAL기 부기장은 기장에게 ‘엔진이 고장 나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미사일 폭발 11초 후 조종실 고도 경계경보가 울렸는데 이는 구멍 뚫린 동체에서 공기가 유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요한 부분은 미사일 폭발 뒤 11초 후 경계경보가 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KAL기의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기가 바다에 불시착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추락장면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불시착에 대한 정황근거는 있다. 우선 KAL기 추락승객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점. KAL기 추락 추정현장 일대를 수색한 미국 잠수부들이 찾아낸 시신은 불과 10여구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기 사고지역 일대에는 여객기에 적재되어 있어야 할 화물들도 없었다. 대한항공기 사고 이후 일본의 해안으로 밀려 온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부분 시체 2구와 작은 신체조각 11구가 전부였다.
또한 슐로스버그 교수의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소련 공군 내부의 교신자료에 따르면 소련 공군은 맨 마지막으로 오베론 섬 상공에서 KAL기가 불시착을 위해 강하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미국 첩보기관 NSA도 91년 6월의 조사에서 KAL기가 오베론 섬 근처 바다에 ‘추락’했거나 ‘착수’(불시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련 공군은 KAL기가 그들의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곧장 헬기를 보내 현장수색을 명령했는데 이 과정에서 KAL기의 불시착 사실이 드러났고, 소련은 즉시 해군 잠수병 등을 파견해 KAL기 승객들을 전원 체포해 수용소로 보냈다는 것이 슐로스버그 교수의 주장이다. 소련 측의 허가로 9월 8일 시작된 미-일 양국의 수색작업은 당연히 허탕일 수 밖 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련 측이 사고 직후 213켤레의 신발을 사고현장에서 수거했다고 공개한 것이다. 문제의 신발들은 거의 대부분 유족들이 피해자의 신발이라고 확인했다.
KAL 007 승객들은 어디에 있나
그렇다면 KAL 007 승객들은 어디로 갔을까. 슐로스버그 교수는 소련에 거주했던 유태인 故 아브라함 쉬프린 씨의 조사 결과에 따라 KAL 007 승객들이 소련의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은 소련의 위탁가정이나 보호시설에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사망한 쉬프린 씨는 유태계 소련군 장교 출신으로 크라스노다 지역검사였으며, 한때 숙청되어 강제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쉬프린 씨는 지난 89년부터 91년까지 시베리아 지역을 조사했는데 그 조사는 소련의 강력한 경계로 인해 난항에 부딪쳤다.
그렇다면 왜 현재는 조사가 힘들까. 그 이유는 시베리아 지역이 워낙 광대할 뿐만 아니라 KAL007 승객 가운데 고령 승객들의 경우에는 사망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5세 이하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잃었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연령을 가진 어린이의 경우 소련 측의 세뇌공작으로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었을 수 있다. 아니면 나이가 들고 난 뒤 소련 측이 수용소로 보냈을 수도 있다. 소련은 망했지만 시베리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수용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소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의 형태를 빌린 집단이 수용소들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은 기능공들을 이들 ‘민간 수용소’에 보내 달러를 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민간 수용소들은 사실상 외부와 접촉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무법천지나 다를 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러시아의 부패가 심하다는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KAL기 승객들의 소재 이외에도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는 것은 미국 측이 KAL기의 소련 영공 침범을 알면서도 방치했는가 하는 의혹이다. 당시 소련 영공 주변에는 미국 전자정찰기 RC-135기가 날고 있었다. 슐로스버그 교수의 웹사이트에는 문제의 RC-135기 승무원들과 같이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연락을 보내와 RC-135기를 통해 ‘미국 측이 KAL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왜 미국 측이 KAL기를 회항시키지 않았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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